탄산염암에 대한 Sorby의 공헌
지질학을 강의하다 보면 지질학이란 학문의 기초를 만든 초기의 여러 지질학자를 접하게 된다. 대륙이동설의 Wegener, 동일과정설의 Charles Lyell, 그리고 James Hutton 등 무수히 많다. 그러나 퇴적암석학의 발자취를 돌아보면 문득 Henry Clifton Sorby의 업적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적은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한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거의 70여년 동안의 탄산염 암석학 또는 탄산염 퇴적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많은 암석학을 전공하는 이에게도 탄산염암은 광물학적으로 너무 단조롭고 또한 호기심을 유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의 층서 고생물학자들은 속과 종의 명명에 바쁜 나머지 탄산염암의 퇴적환경 복원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고 석유 회사에 근무하는 지질학 전공자들은 지향사의 연구에 매달린 나머지 탄산염 퇴적물의 연구에는 게을리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만의 지질학 전공서적을 뒤져보면 Sorby의 업적에 입을 다물 수 없을 것이다.
Sorby는 1826년 영국의 셰필드에서 태어났다. 그는 지질학 분야에 전문적 직업을 갖지도 않았고 오직 그가 가지고 있던 호기심에 따라서 개인 연구를 수행하였다. 우선 그의 업적을 들여다보면 그의 천재성에 가까운 과학자로서의 업적이 너무나 과소평가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절로난다. 그의 업적을 간단히 들여다보면 그는 쇄설성 퇴적물의 연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인 고수류 연구를 체계적으로 수행한 첫 번째 지질학자였으며 금속학에 있어서의 기본이 되는 금속 성분, 재결정 작용, 변형 작용을 연구함으로써 금속학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저명한 퇴적암석학자인 미국의 Fork는 그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곤 했다. “최근에 이룩한 많은 탄산염암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나는 단 한 줄의 Sorby에 관한 글을 본적이 없다. Sorby가 언급한 모든 사항은 아직도 유효하며 Sorby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마치 내가 성경을 읽고 있는 느낌이 든다.” Sorby가 쓴 1851년 chertified limestone에 관한 논문은 최초의 암석학에 관한 논문이었으며 이 논문은 최초의 화성암 논문보다 12년이나 먼저 출판된 것이었다. Sorby는 또한 1855년 최초의 정량적인 암석학연구를 수행하였다(그는 트레이싱 종이로 광물을 그리고 오린 후 그 종이의 무게를 재어 광물구성 성분비를 계산하였다. 1879년 그는 대부분의 석회암의 주구성 성분이 기계적으로 퇴적된 입자들로 이루어졌으며 이들은 화석 조각들, 우이드, 재순환된 탄산염 입자, 그리고 펠렛들 이라고 언급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오늘날 탄산염암의 주구성 성분과 완벽하게 일치함을 알 수 있다. 더욱더 놀란 사실은 그는 어떤 조개가 방해석으로 이루어져있고 어떤 조개는 아라고나이트로 이루어져있는지를 밝힌 첫 번째 지질학자 이었다. 그는 또한 조개들의 구조와 광물학적인 성분이 삭박작용, 분해작용을 받아 암석의 기록속에 어떻게 보존되는 지를 밝혔다. 1862년 그는 방해석으로 이루어진 조개류는 안정하지만 아라고나이트로 이루어진 것들은 선택적으로 풍화 받을 것이며 또한 아라고나이트는 열을 받거나 혹은 물속에 오랫동안 담겨져 있을 경우에는 방해석으로 변환된다는 사실을 인지했으니 실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1853년 그리고 1879년 그는 서로 다른 광물로 이루어진 조개들은 광물 결정격자의 차이로 인해 서로 다른 크기와 모양의 머드입자로 부서지며 이는 또한 다른 마모력과 화학적 분해에 대한 저항성을 보인다는 사실을 보고하였다. 우이드에 관한 보고 또한 읽는 이로 하여금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하는데: 우이드는 물결이 세고 수온이 따뜻한 지역에서 형성되며 아라고나이트 prism들이 기계적으로 우이드 외부에 붙어서 성장하며 concetric bands들은 화학적 침전의 속도나 삭박작용의 차이에 의해서 형성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방사성 형태의 방해석은 아라고나이트가 변질되어 형성된다고 하였다. 1861년 그는 최초로 cocolith가 유기적 기원이며 chalk의 주된 구성 성분이며 또한 그는 chalk의 기원을 심해의 ooze와 비교하였다. Sorby는 탄산염 머드의 대하여 4가지의 기원을 제시하였다 첫째 화석의 삭박작용 둘째 화석의 유기적 분해 작용 셋째 화학적 침전작용 넷째 이미 존재하는 석회암의 삭박작용. 특히 그는 탄산염 골격질 입자의 분해에 의해서 형성되는 다양한 형태의 머드의 크기와 모양에 대하여 관심을 가졌다. 1904년 Sorby는 Funafuti boring에 관한 논문으로 그의 탄산염암에 관한 그의 탁월한 연구논문을 마감하였다. 마지막 한가지 더 보태자면 그는 대학교육도 받지 않고 평생 결혼도 않고 살았던 열렬한 개인주의자 이었다. 21세기에 사는 지질학도의 한사람으로서 Sorby의 연구업적을 보면 스스로 고개가 숙여짐을 어찌할 수 없다. 새삼 한 자연 과학자의 말이 떠오른다 “연구란 모든 이가 봐왔던 것을 보는 것이며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것을 생각하는 것이다.”
Henry Clifton Sorby aboar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