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시대 중생대의 한반도 복원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선임연구원 이융남
지금까지 우리나라 중생대 지층에서 발견된 척추동물화석을 기초로 아직은 크게 불완전하지만 우리나라 중생대 시대를 복원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발견되어 연구된 척추동물 화석들을 기초해 다음과 같은 스토리를 구성해 보았다.
트라이아스기와 쥐라기 시기는 격렬한 화성활동으로 물고기를 제외한 대형 동물을 찾아보기가 매우 어렵다. 땅속에는 뜨거운 마그마가 자리를 잡고 있었지만 김포, 문경, 보령 지역에는 조그만 늪지와 하천들이 발달해 30cm가 넘는 큰 물고기들이 헤엄을 치고 물가에는 나자식물들이 빼곡히 들어차 많은 곤충들의 서식지를 제공하고 있었다. 백악기가 시작되자 경상남북도를 거의 포함하는 커다란 호수가 형성되면서 한반도는 공룡들의 낙원이 된다. 즉, 경상도에 만들어진 커다란 호수와 그곳으로 흘러 들어가는 조그만 하천과 강에는 풍부한 물이 넘쳐나고 기후는 우기와 건기가 반복되면서 식물들이 빠르게 성장해 나갔다. 강변의 범람원 지역에는 목긴공룡인 용각류들이 집단으로 서식하고 있었는데 그 큰 덩치와 긴 목을 이용해 주위의 나자식물들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워 삼림을 황폐화 시키고 있었다. 이 용각류들은 카마라사우루스, 브라키오사우루스, 티타노사우루스, 유헬로푸스와 친척관계에 있는 공룡들로 서로 조상은 다르지만 사이좋게 서식지를 공유하고 있었다. 특히 중국에서 번성한 유헬로푸스류가 한반도까지 내려온 것으로 보아 그 당시 한반도는 목긴공룡들 살아갈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던 것 같다. 사족보행의 용각류와 더불어 이족보행의 조각류 공룡도 맛있는 소철류와 속새류, 그리고 새롭게 진화한 꽃피는 식물들을 먹으며 자기 영역을 구축해 나가고 있었다. 이 조각류들은 원시적인 오리주둥이공룡들이었는데 질긴 식물을 씹기 위해 800개 이상의 이빨로 채워진 턱을 효과적으로 사용했으며 닳은 이빨은 빠지고 새로운 이빨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이들은 포식자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무리를 지어 이동하고 함께 강가에 모여 알을 낳고 새끼를 길렀다. 새끼를 키우는 산란지는 여러 가지 식물 썩는 냄새와 공룡들의 배설물 냄새가 진동하고 이 냄새를 맡고 달려드는 파리와 모기같은 곤충들이 공룡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강가에는 길이가 20 cm 밖에 안돼는 프로토수쿠아에 속하는 원시악어들이 살고 있었는데 이 조그만 악어는 크기에 비해 매우 생명력이 강해 한반도를 넘어 중국과 몽골까지 그 서식지를 확장해 나간다. 이들 악어는 현재 악어들처럼 물가에 사는 것이 아니라 육상에 서식한 악어로 튼튼한 두다리로 빠르게 움직이며 곤충을 잡아먹었다. 강과 제방에는 다양한 거북과 자라들이 따스한 중생대 백악기의 햇볕을 쬐고 있었다. 이렇듯 한가로운 서식지에는 호시탐탐 먹이를 노리는 육식공룡들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는데 이들은 알로사우루스와 메갈로사우루스에 속하는 육식공룡들이었다. 이중에는 이빨 길이가 9 cm에 전체 길이가 12 m나 되는 아크로켄소사우루스같은 거대한 수각류도 있었다. 이 공룡은 백악기 말에 살았던 공룡의 제왕 티라노사우루스와 같은 크기로 우리나라에도 티라노사우루스에 버금가는 초대형 육식공룡이 살고 있었던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이들과 함께 티라노사우루스의 조상인 원시 티라노사우루스류로도 살고 있었다. 이들의 크기는 후기 백악기의 티라노사우루스처럼 거대하지는 않았지만 티라노사우루스류의 특징은 D 단면형의 전상악치를 갖고 있었다. 맑은 호수 속에는 크기가 10 cm 내외의 여러 종류의 민물 물고기가 또 하나의 물속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었는데 이를 먹이로 삼는 익룡들이 호숫가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키우고 있었다. 백악기에 주로 번성한 익룡은 프테로닥틸루스류에 속하는 꼬리가 짧고 이빨이 없는 익룡이 대부분이나 이 때 경상호수에 살았던 익룡은 이빨이 잘 발달한 익룡으로 이빨 길이가 7 cm나 되었다. 이들은 호수가 절벽에 살면서 긴 날개를 이용해 높새바람을 타고 활강해 내려와 호수 수면을 낮게 나르다 수면에 가까이 있는 물고기를 길고 날카로운 이빨을 이용해 재빠르게 낚아챘다. 백악기 전기가 끝날 무렵 경상호수는 빠르게 침강하기 시작하면서 동쪽으로 그 범위를 넓혀나갔다. 이와 함께 다시 화산활동이 서서히 시작되고 있었다. 호수의 크기가 계속 변하자 호숫가의 수면이 계속 변하였고 호숫가를 찾는 공룡들이 수분을 함유한 호숫가 퇴적물에 반복하여 발자국을 남겼다. 화산활동이 시작되자 공룡들은 더 안전한 곳을 찾아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때 숲보다는 이동이 편한 호숫가를 따라 집단 이동을 시작했다. 길이 5 m 크기의 오리주둥이공룡들이 떼를 지어 피난길에 오르면서 평행한 보행렬들을 무수히 남겼다. 용각류도 길이 20 m의 큰 어미들이 갓 태어난 길이 1 m의 아주 어린 새끼들을 뒤에 세우고 이동을 시작했다. 덩치 큰 용각류 역시 자연의 재해에는 버틸 재간이 없었다. 이들 뒤에는 물론 병든 공룡이나 어미에게서 뒤쳐진 새끼들을 호시탐탐 노리는 육식공룡들이었다. 항상 배고픈 육식공룡들은 비록 힘든 상대일지라도 용각류 무리를 가끔 공격했을 것이다. 백악기 후기로 접어들면서 한반도 곳곳에서 화산이 본격적으로 터지기 시작했다. 곳곳에 화산재들이 쌓이기 시작했고 경상분지에서 공룡의 흔적은 이내 자취를 감추었다. 경상도를 떠난 공룡들이 처음 도착한 전남 보성에서 일부는 자리를 잡고 알을 낳았다. 그러나 한 무리는 이동을 계속해 전남 해남에 다다르게 된다. 그러나 앞에는 얕은 호수가 가로막고 있었다. 호수는 그리 크지 않았으며 주위에 화산이 간헐적으로 폭발하고 있었다. 크기 15 m의 거대한 용각류들은 호수를 건너기로 결심했다. 용각류들은 물이 점점 깊어지자 부력에 의해 엉덩이 부분이 먼저 떠 앞발만 사용해서 조심스럽게 호수를 건너갔다. 이 호숫가에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진화한 물갈퀴를 가진 새들이 떼를 지어 호숫가에서 먹이 활동을 하고 있었다. 격렬한 화산활동을 피해 공룡들은 경기도 화성의 강변까지 이동했다. 이곳에서 공룡들은 종족번식을 위해 매년 열심히 알을 낳았다. 하지만 빈번하게 일어나는 홍수에 의해 불행이도 알들은 부화하지 못하고 깨어지고 만다. 화산활동은 점점 더 심해지고 공룡들이 피신할 곳은 자꾸 줄어들고 있었다. 공룡들은 점점 더 생존하기가 어려워져가고 있었다. 한반도에 번성했던 공룡들은 백악기말까지 생존하기 못하고 안타깝게도 그들의 긴 여정을 마감하고 말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