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형성의 비밀과 미래의 한반도의 조구조 환경
이윤수/한국자원연구소/이학박사
지구는 지독한 기록광이다.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매 순간마다 낱낱이 기록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지구는 인간처럼 일기장이나 컴퓨터를 이용하지 않는다. 암석과 퇴적물이란 훌륭한 매체를 사용해, 경우에 따라서는 수십억년이나 그 기록을 보존하기도 한다. 그 속에는 당시에 살았던 생물의 흔적이나 유해, 지구 자기장의 강도와 방향, 암석 생성과 변형에 관련된 구조뿐만 아니라, 기후와 환경변화에 따라서 퇴적되는 지층의 두께나 입자의 종류와 크기 등에 대한 정보가 가득 들어 있다.
지구상에 무슨 일들이 있었길래, 수많은 생물들이 나타나고 사라졌던 것일까? 무엇 때문에 그들이 번성하였을까? 지질시대를 통하여 본 우리 인간은 과연 어떤 존재이며, 앞으로 지구상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이러한 의문들에 대한 긴요한 해답이 바로 우리 주변 암석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한반도는 좁은 면적임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대에 걸쳐 형성된 다양한 암석들이 담겨져 있어, 그 자체가 자연사 박물관이다. 한반도가 미래에 어떻게 변하며 이에 따른 환경 변화를 예측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알아야 할 지식들이 모두 여기에 숨어있다. 오랜 지질시대를 거쳐 암석에 남겨진 이 불가사의한 블랙박스를 해독하는 일은 매력있고 신나는 일이다.
동해가 열린 사건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애국가 1절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한반도의 영역은 동해다. 바로 이 동해가 미래 한반도의 모습을 알 수 있는 열쇠다. 1천만년이 지나면 동해는 현재보다 크기가 줄어들 것이고, 한반도의 동쪽 해안은 격심한 지진과 화산활동의 무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동해는 평균 깊이가 수천m에 달하지만, 그저 밑밑하게 꺼져있는 바다가 아니다. 2천m 미만의 상대적으로 얕은 수심을 갖는 지형들이 분포하고 있다. 이 해저지형들과 함께 일본의 꺾여진 부분을 모아서 한반도의 동쪽 해안선에 끼워 맞추는 퍼즐놀이를 해보자. 그러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앗! 동해가 없어졌다!
그렇다. 동해는 원래 존재하지 않았으며, 약 2천3백만년 전에 새로이 탄생한 바다였던 것이다. 즉 한반도와 일본은 하나의 육지로 연결돼 있었다는 말이다.
독자 여러분은 2천3백만년 전이라 하면 무작정 아득히 먼 옛날로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어린 시절 라디오방송에 \'장수만세\'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거기서 4세대가 동시에 사는 장수 집안이 소개된 기억이 있다. 조선시대의 건국시기는 불과 6백년 전으로 대개 20세대 내외에 해당하는 기간이라고 한다면, 4세대가 다섯번만 거치면 도달할 수 있는 너무 가까운 과거다. 이 6백년이 불과 17번만 거듭하면 도달하는 1만년 전의 석기시대 역시 그리 멀지 않은 옛날이며, 이 1만년을 2천3백회만 되풀이하면 동해가 막 벌어지는 시기에 도달하게 된다.
그렇다면 한반도에서 일본을 수제비 떼어내듯 쉽게 분리시킨 힘은 어떻게 생기는 걸까? 그 해답을 알기 위해 먼저 지표의 판구조를 살펴보자. 지구 표면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10여개의 주요 판들로 구성되어있다. 현재의 한반도는 유라시아판에 속해 있으며, 북동쪽으로는 북아메리카판, 동쪽에는 태평양판, 남쪽에는 필리핀해판, 그리고 서남쪽으로 인도-호주판에 둘러싸여져 있다.
태평양의 바닥 깊숙한 맨틀에서 솟구쳐 오르는 용암은 거대한 바다산맥(해령)을 만들고, 그 용암이 바닷물에 식으면서 굳어져 해양지각을 만든다. 뒤이어 생기는 새 해양지긱은 바로 전에 만들어진 해양지각을 해령의 양 바깥쪽으로 밀어낸다. 해양지각이 머나먼 지구 여행을 시작하는 것이다. 멀리 밀려난 해양지각은 점점 냉각되어 비중이 커지고, 가벼운 유라시아 대륙지각을 만나면서, 유라시아판 밑으로 파고 들어가 지하 약 670 km 깊이(상부 및 하부 맨틀의 전이대)에 일시 집결된다. 이 집결체의 무게에 의하여, 뒤따라 오는 해양 지각은 마치 식탁보처럼 끌려 당기어져 들어가고, 그 결과 유라시아판과 태평양판이 만나는 경계 부위에서는 깊은 골짜기(해구)가 형성된다.
해양판이 맨틀로 들어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뜨거운 맨틀층이 차가운 해양판을 달가워할 리가 없다. 마치 달구어진 기름에 감자를 넣었을 때처럼, 일대 요동이 발생하는 것이다. 더욱이 해양판 위에는 다량의 물을 포함한 퇴적물의 일부가 같이 묻어 끌려들어 가는 데, 이 수분이 맨틀의 녹는 점을 낮추어 대륙 주변에 마그마를 만든다. 이 마그마의 세력이 충분히 커지면, 더욱 강렬한 대류를 일으킨다. 이 힘에 밀려 대륙 연변부의 약한 부분이 떨어져 나갈수 있으며, 이를 후배호 확장이라 한다.
지도에서 보면 일본 열도는 가운데가 움푹 꺾여있는 모습을 띠고 있다. 유라시아판에서 떨어져 나갈 때 어떤 일이 벌어졌길래 이런 모습을 가지게 된 것일까. 이에 관한 3가지설이 제안되고 있다.
1980년대 일본 고베대학의 오토후지 교수는 서남일본과 동북일본에 대해 1천5백만년보다 오래된 암석들의 고지자기 방향이 같은 시대의 유라시아의 방향보다 각각 시계방향과 반시계방향으로 약 50도씩이나 차이가 난다는 중요한 연구 결과를 제시했다. 이것은 약 1천5백만년 이전에는 일본열도가 일직선상으로 놓여 있었다가 무언가의 지각 변동에 의해 서남일본과 동북일본 지괴가 각각 시계방향과 반시계방향으로 약 50도 정도 회전되었기 때문이며, 일본 열도가 굴절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오토후지교수는 이 사건이 동해가 확장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하고, 열도의 북쪽(대륙쪽)에서 후배호 확장이 동해 한가운데를 중심으로 진행되어 태평양을 향해 일본의 중앙부가 양단부에 비하여 많이 밀려났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모양으로 되었다는 설명하였다. 이 모습은 마치 부채가 펼쳐진 형상과 비슷하다고 해서 \'부채꼴 확장설\'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오토후지 교수가 즐겨 찾던 술집의 문이 양쪽으로 밀고 들어가는 형태였는데, 어느 날 이 문을 열다가 힌트를 얻었다고 해서 \'bar-door\' 모델이라고도 불린다.
최근 필자는 한반도의 고지자기 연구 결과를 실시하고, 일본 열도가 꺾여지기 전에도 이미 동해가 확장되고 있었다고 제안하고, 부채꼴 확장설을 수정한 모델을 제시했다. 일본 열도가 일단 일직선으로 평행하게 밀려내려오다 어느 순간 가운데가 굽기 시작했다는 \'2단계 확장설\'이다. 이 설은 필리핀해판이 시계방향으로 90 가까이 회전하면서 북상했다는 미국 남가주대학의 풀러 교수의 연구 결과 (1995년과 1996년, 영국 런던대학의 홀 교수에 의해 더욱 정밀하게 검토되었으며, 자전 방향만 반대일 뿐 동으로 휘어지는 이동 경로가 태풍과 유사)가 단서를 마련해 주었다. 2단계 확장설을 좀더 들여다 보자. 2천3백만년 전 한반도의 동측에 위치하고 있던 일본 열도의 북측에서 후배호 확장이 일어났다. 열도는 일직선 형태로 남남동 방향으로 태평양을 향해 진행하다, 1천5백만년 전 필리핀해판이 일본 서남쪽 일대(큐우슈우)와 충돌을 일으키게 된다. 이 충돌부를 시이소오축으로 하여 일본 열도의 회전이 일어나, 지금처럼 일본이 꺾이게 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 일본 열도의 서쪽은 북상하고 동쪽은 남하하게 되었으며, 석유가스가 매장된 울산 앞바다의 주름진 지층과 단층 구조는 이때 큐우슈우가 북상하면서 만들어낸 작품이다.
동아시아는 본디 많은 지각 조각들이 모여 모자이크처럼 복잡하게 구성된 대륙이며, 이들 경계의 이음새는 흔히 화성암이나 변성암으로 용접되어 있다. 이 용접부는 덜 아문 상처와 같아서, 작은 충격에도 다시 떨어질 수 있다. 특히 4-5천만년전에 있었던 태평양판의 운동 변화가 일본 주변부에 연약대를 만들었으며, 이 연약대를 따라 후배호 확장이 일어나, 결국 2천3백만년전에 일본이 태평양쪽으로 떨어져나간 것이다.
1980년대 중반 프랑스의 졸리베 박사는 동해가 만들어진 원인에 대해 앞서 설명한 후배호 확장설과 다른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5천만년 전 인도대륙이 유라시아판에 충돌했기 때문에 일본이 떨어져나갔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을 간단히 이해하기 위해 테니스 공 하나를 떠올려보자. 공을 땅에 대고 한쪽면을 누르면 공은 납작해진다. 이때 누르는 방향과 수직으로 공이 늘어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원리로 인도대륙이 충돌을 일으키면서 유라시아의 한쪽 귀퉁이에 있는 일본을 옆으로 밀어냈다는 설명이며, 프랑스의 타포니에 박사가 제안한 (인도의 충돌이 약 3천2백만년전 인도차이나 반도의 남진을 야기하였다는) 설을 동해 확장의 기구로까지 확대 적용하였다. 현재 인도판이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은 오늘날 학계의 정설이지만, 2천3백만년전 동해의 확장을 주도하였다는 지질학적 증거가 미약하다. 이러한 이유로 이 설은 후배호 확장설에 가려져 버렸다.
독자들 중에는 \'작은 인도대륙이 거대한 유라시아판에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칠까?\' 라고 미심쩍어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보는 작은 인도대륙은 물 위에 보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인도판은 유라시아대륙 밑에 엄청난 양의 지각을 밀어넣고 그 한쪽 귀퉁이를 들어 올리고 있는 \'얼굴만 작은 장사\'다. 인도판은 약 8천만년 전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지괴와 분리된 이래, 1년에 수십cm에 달하는 무서운 속도로 북진했고, 5천만년 전부터 유라시아판에 충돌하기 시작했다(이 시기에 호주판과 결합되었기 때문에 현재는 인도-호주판으로 불린다). 지상 최고의 히말라야산맥이 형성된 것이 바로 이 때문이며, 유라시아와 인도 사이의 바다에서 쌓였던 퇴적물이 3천만년전 급격히 융기하여 고산지대로 되어버린 것이다.
미래의 한반도는 어떤 모습일까?
현재 한국의 동해는 계속 넓어지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지질학적 증거에 따르면 동해가 벌어지는 일이 끝난 것은 대략 1천5백만년 전이었고, 약 5백만년 전부터는 오히려 조금씩 좁혀지고 있다.
한반도가 속한 유라시아판은 동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여기에 정면으로 맞서 동쪽에서 다가오는 것이 태평양판이다. 아래에서는 인도-호주판, 그리고 필리핀해판이 북상하고 있다. 바로 이 4가지 판이 현단계 한반도의 지각변형을 주도하고 있다.
유라시아판과 태평양판이 서로 가깝게 다가선다는 것은 언젠가는 동해가 다시 닫힐 것을 시사한다. 더욱이 인도-호주판이 북상하면서 유라시아판을 밀어붙여 그 귀퉁이에 있는 한반도와 중국 대륙을 동쪽으로 빠져나가도록 힘을 가하고 있다. 이 힘의 영향으로 중국 대륙내의 북경인근과 만주 지역에는 땅이 벌어져 움푹 꺼진 지구대 지형이 발달하고 있으며, 그 지구대의 동쪽에 위치한 한반도에 동서방향의 압축응력을 발생시키는 것이다. 마치 타포니에 박사의 주장과 같이 인도판이 유라시아판에 충돌해 3천2백만년전 인도차이나 지괴를 옆으로 밀어냈던 것과 같은 원리다.
하지만 이것은 과거 5천만년 동안의 지괴들의 움직임이 지속된다는 가정하에서 벌어지는 한가지 시나리오일 뿐이다. 언제 이런 일이 벌어질지 정확히 예견하기 어렵다. 일본 국립천문대가 발표한 지구위치정보시스템(GPS)를 분석해보면 최소한 1천만년 후까지 동해가 닫히는 \'경향\'이 계속되기는 하겠지만, 동해가 완전히 사라지는 일은 그 때까지 벌어지지 않을 것으로 추측된다. 즉 1천만년 후에도 현재 판들 간의 \'알력\'은 비슷하게 유지될 것이며, 한반도의 모습은 외형상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
태평양 속의 해저잠수함
그렇다고 안심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1천만년 후에 동아시아에 커다란 영향을 줄 수 있는 무시무시한 복병이 태평양판 안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태평양판의 서측부에는 약 1억2천만년 전 거대한 맨틀이 치솟아 만들어진 돌출부(Shatskiy Rise)가 있다. 한반도보다 조금 큰 규모다.
문제는 이 돌출부가 연간 약 10cm의 속도로 , 일본의 가미가제 특공대가 2차대전때에 그랬던 것과 반대로, 이번엔 일본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 간의 거리는 불과 약 1천3백km 남짓하는 정도이며, 1천3백만년 후부터 이 거대한 \'해저잠수함\'이 일본과 부딪히게 된다. 이 돌출부의 밀도는 대륙지각보다 커서, 일본 열도는 물론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에 일대 지각 변동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예를 들어 한반도 동해안에는 현재보다 훨씬 강력한 지진이 일어날 것이며, 화산 활동도 곳곳에서 활발하게 전개될 것이다. 또 돌출부의 밀어붙이는 힘 때문에, 표지에서 보여주는 그림처럼, 약 3천만년 후에 동해는 닫혀버릴 가능성이 커진다.
1천만년 후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는 또다른 변수는 인도-호주판이다. 이 판은 현재 동남아시아 군도들을 연간 약 7-10cm 정도의 속도로 힘차게 밀어 붙이고 있다. 그 힘으로 동남아시아 군도가 일본 남단에 도착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5천만년 정도 걸릴 것이다. 인도대륙의 북상때문에 작용하는 횡압력의 영향으로, 한반도의 서북쪽의 북경과 만주지방을 잇는 지구대에서는 왕성한 화산작용이 발생하여 땅이 벌어지고, 화산과 깊은 호수도 만들어 질 것이다. 한반도는 중국과 함께 유라시아에서 약간 동쪽으로 밀려나겠지만, 태평양판의 저항에 부딪혀 결국 다시 유라시아판에 귀속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현재와 같은 추세대로라면, 남북방향으로 발달된 대서양의 해령의 활동으로 유라시아판은 동진을, 북아메리카판은 서진을 계속하여, 북태평양은 점점 더 좁아지는 반면, 남태평양은 인도양과 대통합이 이루어 진다. 과거 2억년 이상 번성했던 북태평양의 시대가 앞으로 2억년 후면 종말을 맞게된다. 이 때에 남극대륙을 제외한 전세계의 대륙이 하나로 뭉친 초대륙이 형성되고 바야흐로 한반도는 초대륙의 중심부에 위치하게 된다.
다시 1천만년 후의 세계로 돌아가 보면, 호주는 적도 가까이까지 올라올 것이고, 이때 동남아시아 군도들의 간격이 조금씩 좁혀지면서, 서쪽으로 향하는 적도 해류의 흐름이 차단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뜨거운 적도 해류가 역류해 한반도 근해까지 다가올 것이다. 한반도가 현재보다 훨씬 무더운 아열대성 기후로 바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인도-호주판과 태평양판, 동남아시아 군도의 계속되는 압축응력은 뉴기니아섬에 또하나의 히말라야를 탄생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히말라야산맥도 지금보다는 좀 더 높아질 것이다. 그러한 지형적 변수는 한반도뿐만 아니라 환태평양 지역의 기후 구도에 일대 변혁을 가져올 것이다. 하지만 지하 자원의 부국이 된다는 좋은 점도 있다. 대륙지각의 충돌은 주변에 엄청난 석유나 금속 자원을 배태하기도 하며, 인도네시아와 중동, 키스피해 주변국들이 그 좋은 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