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역사에서 나타난 지진관
최근까지도 지진에 관하여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인간은 상상을 동원하여 지진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신화와 전설을 창조했다. 최초의 인류는 대지가 흔들리는 지진현상을 친숙한 동물 및 괴물의 움직임 탓이라고 생각하여 갖가지 설화를 만들어 이를 믿어왔다.
예를 들면 인도에서는 육지를 지탱하고 있는 코끼리가 움직여서 지구가 흔들린다고 생각하였고 몽고에서는 거대한 개구리가 대지를 얹고서 실룩실룩 움직임에서 지구가 요동친다고 생각했으며 일본인은 메기가 가끔 기세좋게 움직여서 대지가 흔들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진에 관하여 내려오고 있는 전설 중에서 특히 일본의 민간에게 전승되어온 전설은 재미있고 유머러스하다. 일본의 전설에 의하면 지진은 지하의 진흙 속에 살고 있는 메기가 움직여서 발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이 물고기는 장난을 좋아하며, 그 장난을 제지 할 수 있는 자는 지진으로부터 수호하는 카시마 대명신뿐이라고 생각하였다. 대명신이 요석이라는 돌로 메기를 억누르고 있는 한 지구는 평온하지만 그 감시가 소홀해지면 메기는 주제넘게 나서서 날뛰고 돌아다녀서 지진이 발생한다고 믿고 있었다. 1855년 10월 에도(현재의 토쿄)에서 대규모의 지진이 발생하여 수천명이 사망했다. 10월은 “칸나 쯔끼(神無月-신들이 부재중인 말이라는 뜻)”라는 별명을 지닌 달로서 일본의 모든 신들이 이주모 신사에 집합한다는 전설이 있으며 실제로 에도의 지진은 이 10월에 많이 발생하였다. 전설을 깊이 믿는 에도 시민들은 신이 부재중이었기 때문에 메기가 마음대로 장난을 친 것이라고 생각을 했으며 전설이 사실이 되어 나타난 데에 자극을 받은 일본화가는 메기 그림을 목판화로 만들어 지진발생에 대한 메기의 전설을 표현했다. 많은 목판화에 그려진 메기는 힘이 세지만 카시마 대명신이 메기를 억눌러 주어 마을에는 안정을 찾게되고 다시금 활기가 소생하게 되리라는 신앙심의 공덕을 기리고 있다. 메기가 그려진 목판화 자체가 영험을 지니고 있고 이를 사들여 집안에 장식해 두면 지진으로부터 지켜 주는 부적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믿고 있다. 한장의 목판화가 집 주인에게 보증하는 효력은“만세에 계속되는 행복”을 집안에 보증한다는 것이다. 이들 목판화와 그 속의 글들은 단순히 전설과 유관한 것임에 그치지 않고 피해자들로 하여금 희망을 가지게 하고 있는 것이다. 메기는 대명신 앞에서는 보잘것없고 비굴한 겁쟁이로 표현되어 많은 조롱과 비난을 받고 있는데 이러한 조롱과 비난은 폭리를 취하는 상인과 불친절한 공직자 및 지위가 높은사람에 대한 비판으로 확대되기도 하였다. 1855년 일본의 에도가 지진의 습격을 받은 후 심각한 표정의 여러 신이 질서를 되찾으려고 이주모에서의 회합에서 서둘러 돌아왔다는 전설을 묘사한 당시의 그림, 집들이 쓰러지고 시민이 혼란에 빠져 있을 때 힘의 상징인 요석을 머리 위로 번쩍 쳐든 카시마 대명신의 모습이 왼쪽에 그려져 있는 그림, 메기가 수염을 흔들거리면서 사죄의 노래를 부르며 코믹한 전통 장구 춤을 추어 카시마 대명신의 비위를 맞추고 있는 모습의 그림, 메기 떼 앞에서 카시마 대명신은 본보기를 보이기 위해서 나쁜 짓을 한 메기를 요석으로 억누르고 있는 그림등 여러 가지의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그림 속의 묘사된 문장에 의하면 지진으로부터 어린아이들이 어떻게 하여 구출되었는지, 지진으로부터 살아남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여 차가운 밤 공기 속에서 잠을 잤는지 등에 대해 실제적인 기록이 있는가 하면 지진을 발생시킨데 대해 메기들이 사죄하고 주방에서 다른 물고기들의 인기가 올라간 것에 질투를 느껴 이같은 짓을 저질렀다고 하는등 횡설수설하며 종잡을 수 없는 변명을 늘어놓는 장면을 표출하기도 하고 있다. 대체로 문장내용은 신들이 시민들을 위로하며 지진으로부터 안전을 약속하고 있는 내용으로 되어 있으며 실제로 대지진이 에도의 창가를 엄습하여 파괴했을 때 창녀와 광대들이 메기를 잡기위해 칼에서부터 뜨개질 바늘에 이르기까지 닥치는 대로 가지고 나와서 인정사정 없이 메기를 공격했다고 한다. 인류 역사를 통해 볼 때 대체적으로 지진발생 원인에 대해서는 인간은 신의 분노가 인간에게 엄청난 재앙을 주기 위해서 대지를 흔든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1692년에 발생한 포트로열지진에 대한 그당시 사람들의 인식에서 잘나타나고 있다. 1692년 서인도제도에서 가장 부유한 영국 식민지로서 해적의 근거지였고 술과 노예 매매의 일대 중심지로서도 유명했던 자마이카의 포트로열이 지진으로 대재앙을 당한 이후 지진은 죄로 타락한 인간들에게 하나님이 내리신 천벌이라는 신념이 확고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1692년 6월 7일 수요일 아침 지진으로 인하여 포트로열은 시가지의 3분의 2가 바다 속으로 떨어져 들어갔으며 해일로 나머지 시가지를 덮쳐 약 2000명에 이르는 인명을 잃었다. 수주일 후에 교회 목사였던 히드 목사는 \"그날의 지진은 내 평생 가장 무서웠던 날이었다. 이 세상에는 포트로열사람보다 더 부도덕하고 타락한 사람은 없으므로, 이 무서운 처벌 및 심판에 의해서 하나님이 그들을 회개시키고 갱생시켜 주실 것을 빌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